영화 리뷰 비바리움으로 다시 보는 무한 루프의 공포, 현대인의 내 집 마련과 주체성 상실

 

파스텔톤 집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기묘한 마을 '욘더'에서 시작된 영화 <비바리움>은, 2019년 개봉 당시 많은 이들에게 소름 끼치는 SF 공포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겼습니다. 

코미디, 공포, 미스터리, SF가 뒤섞인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황당한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우리 일상 한복판에 있는 '사육장'을 정면으로 비춥니다.

저 또한 영혼을 갈아 넣어 겨우 마련한 성냥갑 같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매달 대출 원리금과 고정 지출에 숨이 턱 막히던 시절을 보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내 공간이 오히려 거대한 사육장이 되어가는 듯한 감각, 그리고 그 안에서 제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시스템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제 모습을 비바리움에서 비로소 마주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비바리움의 줄거리와 결말을 바탕으로, 영화가 던지는 뻐꾸기 탁란의 은유와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따르고 있는 삶의 궤도가 과연 주체적인 선택인지, 혹은 거대한 사육 틀(Vivarium)에 갇힌 무한 루프는 아닌지 함께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 영화 정보: 비바리움 (Vivarium)
개봉 연도2019년
장르SF, 공포, 미스터리, 코미디
제작 국가아일랜드, 덴마크, 벨기에
러닝 타임97분
관람 등급15세관람가

비바리움 줄거리 요약: 욘더라는 이름의 거대한 감옥

영화 <비바리움>은 함께 살 집을 구하던 유치원 교사 젬마(이모겐 푸츠)와 정원사 톰(제시 아이젠버그)이, 기묘한 분위기의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마틴은 완벽한 주거 공간이라며 '욘더'라는 이름의 기이한 주택 단지를 두 사람에게 안내합니다. 파스텔 초록빛 외벽으로 도배된 똑같은 집들이 끝없이 펼쳐진 그곳에서, 톰과 젬마는 첫째 날부터 묘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중개인 마틴이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뒤, 두 사람은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가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직진과 회전을 반복해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떠났던 9호 집 앞으로 되돌아오는 기이한 무한 루프 현상에 갇히고 맙니다. 

차 기름이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마을을 헤매던 끝에 그들은 결국 절망 속에서 9호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집 앞마당에는 생필품과 음식이 담긴 의문의 상자가 배달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아이를 키우면 해방된다'라는 기괴한 안내문과 함께 갓 태어난 아기가 들어있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두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성장하며, 인간의 목소리를 이상하게 흉내 내는 등 소름 끼치는 행동을 일삼으며 부부를 광기의 심연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 거주자: 젬마(이모겐 푸츠), 톰(제시 아이젠버그)
  • 유인자: 정체불명의 부동산 중개인 마틴(조나단 아리스)
  • 핵심 공간: 똑같은 파스텔톤 집들이 끝없이 이어진 '욘더' 마을
  • 핵심 사건: '아이를 키우면 해방된다'는 안내문과 함께 배달된 정체불명의 아기

비바리움 결말 해석: 톱니바퀴로 전락한 인간의 쓸쓸한 초상

비바리움의 결말은 무한 루프에 갇힌 주인공들이 결국 어떠한 탈출구도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가장 잔혹한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마당에 거대한 구멍을 파는 데 집착하던 톰은 심각한 건강 악화와 정신적 피폐함 끝에 목숨을 잃고,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젬마는 급속도로 성장한 기괴한 '아이'에게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모습으로 도망쳐 집 바닥 안쪽의 4차원 공간으로 숨어버립니다.

그 공간을 추적하던 젬마는 자신들과 똑같이 욘더의 다른 집들에 갇혀 절망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인간들의 비참한 잔해를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쇠약해진 젬마 역시 숨을 거두고, 성인이 된 아이는 톰과 젬마의 시신을 진공 팩에 담아 톰이 파놓았던 깊은 구멍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묻어버립니다. 

그 후 아이는 톰의 자동차를 타고 욘더를 유유히 빠져나가, 처음 자신을 유인했던 부동산 중개사무소로 향해 수명이 다한 늙은 마틴을 쓰레기봉투에 처리하고, 스스로 새로운 마틴이 되어 다음 희생양을 기다립니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한 괴물물의 공포를 넘어선 명확한 상징성을 보여줍니다. 비바리움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취업, 내 집 마련, 결혼, 육아는 주체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사육 틀일 수 있다
  • 끝없는 노동과 양육은 결국 다음 세대의 지배자를 키우는 뻐꾸기 탁란의 숙주 행위에 불과하다
  • 규격화된 삶의 궤도를 의심 없이 수용하는 순간, 인간은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비바리움이 말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무한 루프

제작진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뻐꾸기 유충이 다른 새의 둥지를 독차지하고 진짜 새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통해,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대리모이자 사육사로 착취하는 본질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욘더는 곧 영화 제목인 '사육장(Vivarium)' 그 자체이며, 우리가 사는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매일 아침 꽉 찬 지하철에 몸을 싣고, 퇴근길에 똑같은 표정으로 같은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혹시 나도 누군가의 사육장에 갇힌 건 아닌가' 하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내 집 마련'이라는 단어가 비바리움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입니다. 남들과 똑같은 파스텔톤의 집을 소유하기 위해 평생의 시간을 저당 잡히는 현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탈출구 없는 구멍만 팠던 톰의 맹목적인 노동과 정확히 겹쳐 보입니다. 

사회가 정의한 성공의 기준을 의심 없이 수용할 때, 인간은 개성과 주체성을 거세당한 채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말마다 피로에 찌들어 소파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제 자신이, 그 시절 톰의 공허한 눈빛과 그대로 닮아 있었습니다.

결국 비바리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타인이 규정한 행복의 틀을 깨고 삶의 통제권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되돌리려는 실존적 자각이 없이는, 톰과 젬마처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삶을 반복하는 무한 루프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 삶의 정형화된 궤도: 취업 → 내 집 마련 → 결혼 → 육아
  • 사육장의 특징: 똑같은 외형, 무한 반복, 탈출구 부재, 외부와 단절
  • 인간이 잃어버리는 것들: 주체성, 개성, 온기, 생명력, 자유 의지

결론: 사육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질문

영화 <비바리움>은 결코 코미디와 공포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 문명인에게 보내진 씁쓸한 경고장입니다. 

주인공들이 겪는 비극은 외계 생명체의 위협 탓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됩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네모난 공간에 갇혀 제 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 한번 곰곰이 들여다볼 일입니다.

끝없는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단추는 '이 행복이 정말 나의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타인이 규정한 삶의 각본을 깨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저당 잡는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욘더 바깥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비바리움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메시지일 것입니다.

출처: 영화 <비바리움>(Vivarium, 2019, 아일랜드·벨기에·덴마크·캐나다 합작, 감독 로어핀 발도어손) 네이버 영화 정보 참조